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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요즘들어 핸드폰에 제일 많이 남기는 사진이 벚꽃 사진이다보니 주구장창 꽃 사진만 올리고 있다. 모두 똑같은 벚꽃이지만 찍은 장소와 시간과 느낌이 모두 다르니 괜찮지 않을까-라고 마음 편히 생각한다. 낯선 동네를 산책했다. 상점들이 늘어선 양쪽 도보로 벚나무가 줄지어 있어 참 예쁜 곳인데 유유자적 걸어가는 동네 사람들이 벚꽃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같았다. 순전히 내 취향의, 소박하지만 오래오래 보고 싶어지는 그림. 걷다 보니 나처럼 중간에 멈춰서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걸 담고 싶어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구나. 그나저나 며칠 전 일기에 우리집 근처 벚꽃이 천천히 피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주말 사이 거짓말처럼 활짝 피어버렸다. 아직 만개한 건 아닌 듯 한데.. 엄마 올 때까지 조..
작년에는 딱 1년 전인 오늘 벚꽃이 만개했었다. 사람이 없을 때 여유있게 벚꽃 구경을 하고 싶어 아침 일찍 나왔고, 1시간 정도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오후에 또 나와서 한참을 찍었다. 그렇게 열심히 벚꽃을 찍었는데 인터넷에 올리거나 보정 작업을 거친 사진은 한 손으로 꼽아도 될 만큼 매우 적었다. 왜 그랬지. 사진을 선보이는 것에 대한 귀찮음? 부끄러움?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관념? 이유가 무엇이든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잔잔히 이어지고 있다. 비 소식이 예보된 날이고 특별히 바깥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방에 앉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 구경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날씨는 그저 흐릴 뿐이었고 오후에 찔끔 내린 비는 창문..
전부터 궁금했던 옷 피팅 한번 해보겠다고 왕복 2시간 20분 거리를 다녀오는 게 옳은 생각일까-라는 고민에 빠져 30분을 우왕좌왕했다. 그러다가 '망설일 시간에 일단 행동하는 게 낫다'는 나만의 명언(?)을 떠올리고 바로 외출 준비에 착수했다. 혹시 몰라서 카메라도 챙겼다. 바깥은 바람이 아주아주 많이 부는데 미세먼지도 매우나쁨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애매한 오후에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 시간쯤 되면 사람이 좀 적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희망사항을 머릿속으로 굴리다가 자리가 나서 얼른 앉았다. 맞은편을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란히 앉아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마음이 찡해졌다. 괜히 감수성 폭발할까봐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유모차..
광주에 사는 친구와 카톡으로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벚꽃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가 있는 곳은 진작 벚꽃이 많이 피었다가 지금은 떨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그에 비해 우리집 앞 벚꽃들은 아직 아무 소식이 없는 상태. 같은 계절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멀리서 보면 희끗희끗한 진분홍색이 줄을 잇지만 가까이 가보면 아직 터지지 않은 봉오리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벚나무를 보며 이 쪽은 언제 활짝 필지 궁금해졌다. 요 며칠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봉오리를 닫고 있던 벚나무가 현명했을지도. 주말에 비소식이 있으니 조금 더 천천히 피면 좋겠다. 다음 주부터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그래서 다음 주말 서울에 오는 엄마랑 만개한 벚꽃길을 걷고 싶다.
블루베리 파이는 꽤 흔한 디저트지만 사진과 같이 백설공주에 나올 법한 비주얼로 파는 곳이 드물다. 검색에 검색을 동원했지만 내가 전부터 알고 있던 망원동의 카페, 서울에서 이곳 말고는 없었다. 기분 전환 겸 망원동 산책을 가기로 결정하고 당연히 이 카페도 코스에 넣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는 일정이었는데 너무 배부르게 먹었다가 파이가 맛없게 느껴질까봐 점심도 평소보다 적게 먹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섰다. 우리집에서 망원동,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옮겨 타고 걷다보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전에도 한 번 왔던 곳. 그 때는 왔다가 오픈 시간 전이라 그냥 돌아갔는데 카페 이름이 무척 따뜻해서 한동안 내 머릿속에 남았었다. 한번 가야지, 한번 가야지 하고. 이번에는 ..
아주 기분 좋은 늦잠을 잤다. 일명 '정시 늦잠'이라고 하는데, 알람으로 깨서 시계를 보고 정시에 맞춰서 다시 일어나겠다는 다짐을 한 후 다시 자는 것이다. 나의 정시는 5분 단위로 정의된다. 20분, 25분, 30분, 35분 등등. 시계를 봤는데 26분이면 4분 더 자서 30분에 일어나야 하고 만약 32분에 눈을 떴다면 3분 더 잘 수 있다. 혼자 만든 뫼비우스의 띠같은 규칙에 즐거워하며 실컷 잠을 잤다. 신기하게도 시계를 딱 봤을 때 정시였던 순간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참 내 자신에게 너무 관대했나 허허-하며 슬슬 일어난 시간이 9시 20분. 사실 늦잠 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가끔씩은 이렇게 무의식이 이끄는대로 늦잠을 자도 괜찮겠다. 늘 엄격하게 생각했던 부분에서 스스로에게 선물..
몸에서 다른 아픈 곳을 찾았다. 다니던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병원에 갔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의사 선생님 표정을 보았고 상급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까지 받아버렸다. 기존에 누리던 생활을 되찾고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서서히 깨닫고 있다. 나는 환자라는 걸 계속 자각해야 해. 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른 아픈 곳은 없는지.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는 내 자신에 대한, 내 몸에 대한 문제인데 너무 넋놓고 있던 지난 시간이 부끄럽다.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데에는 항상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나는 요즘 가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때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흔하지만 아픈 후회를 되새..
1. 최근 '내게도 이런 일이'라는 문장을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사건이 몇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여파로 회사를 쉬게 되었다. 바로 내일부터 휴직에 들어가는데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벚꽃 찬란할 4월이 마냥 두렵다.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몸과 마음을 잘 회복할 수 있을까. 좋은 나날이 되기보다는 무탈한 나날이 되었으면 한다. 2. 요란한 봄비 소식에 외출 계획은 다 접어두고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다.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선반 정리였는데, 자질구레한 문구용품과 각종 정보가 담긴 종이뭉치 중 필요한 것만 골라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전부 중요해 보이고 전부 필요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도 좋아하는 카테고리에서는 마음이 많이 약하다. 그래도 몇 시간..
학원 수업 1시간 전 근처 케이크 가게에 들렀다. 생일날의 절반을 고속도로에서 보냈고 나머지 절반은 학원에서 보내게 되었으니 그 전에 소소한 자축을 해두고 싶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제쳐두고 죄책감 없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생일이 나는 좋다. 케이크 가게는 계단이 무척 좁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바로 눈 앞에 케이크 진열대가 펼쳐져 있어 눈이 휘둥그렇게 되었다. 분명 미리 점 찍어둔 케이크가 있음에도 자꾸 다른 케이크로 눈이 간다. 세상에는 예쁘고 맛있는 게 너무 많다. 욕심을 부려 2조각을 고를까 하다가 참았다. 원래부터 묵직하고 큰 사이즈라 2조각을 먹다가는 학원에 지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원이 바로 케이크를 꺼내줬고, 2층에서 먹기에는 진열대가 너무 코앞이라 한 층 더 올라갔다. 사..
1. 자몽의 시간 언제쯤 시간의 빠름에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저번 주보다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차분히 모닝스벅을 맞이했다. 생일쿠폰으로 커피 말고 자몽허니블랙티를 마셨는데 시럽을 줄이고 허니자몽소스를 듬뿍 넣으니 은은한 단맛이 돌아 괜찮았다. 오랜만에 마신 이 음료 덕분에 Y와 보낸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감기몸살로 끙끙대는 몸을 이끌고 나와 영화를 보고, 백화점 밑 스타벅스에서 자몽허니블랙티를 두 잔 시켰었다. 그 날의 영화는 . 스파이더맨2에서 처음 알게 된 후 데인 드한이 나오는 영화는 쫓아다니면서 챙겨보고 있다. 벌써 1년 전이지만 그 때 본 영화도, 따뜻한 물을 두세 번 더 받아와서 우려먹었던 티백도 멀지 않은 추억으로 느껴진다.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