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직장인의 일기 #7 본문
1. 자몽의 시간
언제쯤 시간의 빠름에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저번 주보다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차분히 모닝스벅을 맞이했다. 생일쿠폰으로 커피 말고 자몽허니블랙티를 마셨는데 시럽을 줄이고 허니자몽소스를 듬뿍 넣으니 은은한 단맛이 돌아 괜찮았다. 오랜만에 마신 이 음료 덕분에 Y와 보낸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감기몸살로 끙끙대는 몸을 이끌고 나와 영화를 보고, 백화점 밑 스타벅스에서 자몽허니블랙티를 두 잔 시켰었다. 그 날의 영화는 <튤립피버>. 스파이더맨2에서 처음 알게 된 후 데인 드한이 나오는 영화는 쫓아다니면서 챙겨보고 있다. 벌써 1년 전이지만 그 때 본 영화도, 따뜻한 물을 두세 번 더 받아와서 우려먹었던 티백도 멀지 않은 추억으로 느껴진다.
스타벅스에 오기 전 아침, 선물받은 자몽을 까 보았다. 적당한 쓴맛에 레드오렌지 빛깔을 띤 이 과일을 좋아한다. 그러고보면 자몽청, 자몽에이드, 자몽 디저트 등을 접해봤어도 자몽이라는 과일 자체를 사본 기억은 없다. 얇은 속껍질을 살살 벗겨서 뒤집으니 깔끔하게 과육이 떨어졌다. 손 끝으로 과일 특유의 상큼하고 신맛이 스며들었다. 생각보다 쓰다면, 꿀 한스푼을 섞어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구정 준비
설날 때 쓸 5만원권들을 빳빳한 새 지폐로 바꿔왔다. 누구에게 세뱃돈을 받을지 가늠하던 시절을 지나 누군가에게 줄 세뱃돈을 챙기는 나이가 되었다. 회사에서 챙겨온 봉투에 세뱃돈을 금액별로 나눠담았다. 처음부터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주는 행위 자체가 기쁘고 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3. 셀프불편러
오늘에야말로 출사를 떠나야겠다-했는데 뭔가 계속 읽고 쓰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그냥 저번주처럼 커피빈에 갔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나 자리지옥. 입구쪽에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하필 4인석이라 가방을 내려놓으면서부터 마음이 불편해졌다. 고개는 자꾸 매장 안쪽으로 기울어지고 그야말로 좌불안석. 혼자 앉는 4인석은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좋지 않다. 카페 안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나의 이런 마음과 행동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이런 건 내가 견디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곧 2인석 자리가 비는 걸 확인하고 잽싸게 자리를 옮긴 후에야 한시름 놓고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4. 재정 상태: 언제나 극한
아침부터 시작한 가계부 정산을 좀처럼 끝내지 못했다. 재정목표를 새롭게 정하면서 지출항목에 변화가 필요한데 새로운 기준에 맞춰 항목을 나누는 게 어려웠다. 더불어 계속해서 가계부의 내 수입과, 지출과, 가진 돈의 기록을 보고 있으니 현실적인 금전 감각들이 쉬지 않고 나를 후벼파며 좀 우울해지기도 했다. 달이 짧아 다행이지만 극한이구나, 2월도.
'일단쓰고봅니다 > 직장인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직일기 #1 (0) | 2019.03.31 |
---|---|
케이크 집에서 (0) | 2019.02.27 |
직장인의 일기 #6 (0) | 2019.01.31 |
직장인의 일기 #5 (0) | 2019.01.30 |
직장인의 일기 #4 (0) | 2019.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