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단쓰고봅니다/직장인일기 (31)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내가 나를 컨트롤하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가끔 찾아오는데 이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시종일관 가라앉고 싶은 기분에 우울함과 예민함이 그득했다. 뭐가 이렇게 내 컨디션에 난동을 부려놓은 걸까. 남의 일인 것처럼 한 발자국 떨어져 살펴보니 금세 어떤 게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작은 소외감들이 문제였다. 상대방이 고의가 아닌 걸 알아도, 피치 못 할 상황임을 알아도 이런저런 경우에 쌓인 먼지만한 소외감들이 오늘따라 무거운 돌이 되어 마음을 짓눌렀다. 소외감을 느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애썼다. 나는 표정과 말씨에 많은 것이 드러나는 타입이라 입을 꾹 다물고 모니터와 수첩만 내려다보는 방법을 택했는데 사실 그게 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음에도 ..
어제보다 3시간 정도 일찍 잤는데 일어난 시간은 고작 9분 빨라졌다. 이른 취침시간만큼 돌아오지 않은 이른 기상시간이 아쉽지만 약간의 차이로 훨씬 덜 붐비는 지하철을 탈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사람이 꼭 싫지 않아도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더 이상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서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최선일 것 같은 우울하지만 현실적인 예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사실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는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회사 일도 해야 하고 내 앞가림 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누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볼 때 퍼뜩 정신을 차리는데, 그렇게 하루에 두 번쯤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전날밤까지는 퇴근 후 학원을 가는 것이 좀 귀찮고..
오전 내 날씨가 화창해서 빨래 돌리고 창문도 활짝 열어놓고 참 좋은 휴무의 시작이다. 일찍 일어나서 도서관에 갔다. 경기도권의 도서관이지만 생활권이 내가 있는 곳과 같아 회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걸 1년 만에 알게 되었다. 늦어버린 시간이 좀 아깝긴 하지만 일찍 알았어도 작년같은 생활 패턴으로는 도서관을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거라며 위로해본다. 1년 늦은만큼 올 한해 더 야무지게 도서관을 이용해보겠습니다! 도서관에서 사부작사부작 좀 더 걸어 다이소도 다녀왔다. 새 마스킹 테이프를 사러 간건데 예전에 봐둔 예쁜 디자인들은 다 없다. 바게트와 과일바구니같은 작고 아기자기한 이미지가 10개쯤 반복되는 떼어쓰는 마스킹 테이프였는데 너무 오래 전에 눈도장을 찍어놨나 보다. 물건을 사지 않고 후회한 일보..
1. 야근과 커피는 바늘과 실의 관계 또(?) 야근데이. 이런 날은 뭔가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진다. 출근하고 30분만에 커피 한 잔을 사 마셨는데 오후까지 뜻밖의 커피 선물이 많이 들어왔다. 차가운 아메리카노, 차가운 라떼를 마시고도 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가 하나 남아 집에 들고 왔다. 깨어있는 시간의 5분의 4를 회사에서 보낸 날이라 정신이 없고 약간 지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일 자체보다는 일하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압박하는 내 자신때문에 지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남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 하나라도 더 정보를 알아내고 기록하고 정리하며 야근을 지냈다. 2. 나는 라면을 저녁으로 허겁지겁 먹은 불닭볶음면 덕분에 속이 쓰리다. 그래도 맛있긴 했다. 제품명을 타이핑했을 ..
1.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열심히 사는 기분이 들어 행복해지는 타입 딱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난 기적같은 휴무.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토록 원하던 모닝 스벅의 꿈을 이뤘다. 7시 오픈인 스타벅스에 7시 5분쯤 갔다. 오래 전 선물받은 기프티콘으로 뜨끈한 커피 한잔 받고 앉아 천성인어 노트랑, 스케줄러랑, 노트북 등을 이리저리 흩어 놓고 뭘 먼저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으아 좋아. 2. 신촌역에 인연이 닿다 유효기간 문제로 발등에 불 떨어졌던 배움카드는, 아쉽게도 한 가지 수업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수강 도중 유효기간이 지나는 건 상관없지만 예를 들어 3월에 개강하는 수업을 지금 미리 끊어놓을 수는 없다고. 으음.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규칙이지만(안그러면 1년치 ..
1. 퇴근길, 내가 보고 느낀 것 야근을 했다. 1달에 1번 정도 하는 당연야근(?)이라 별일없이 잘 마치고 퇴근했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가뿐한 느낌이었다. 야근한 날은 9시 반쯤 지하철을 타는데 이 시간에는 사람이 붐비는 것도 덜해서 좋다. 지하철에서 한참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하루내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데 내리기 한 정거장 전 역에서 장님이 탔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다가 딱 딱 하고 지팡이가 바닥을 더듬는 소리에 알아차렸다. 혹시나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 틈으로 지팡이가 빠져버리진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며 지켜봤는데 다행히 무사히 탔다. 그분은 타자마자 바로 옆 손잡이에 기댔다. 일곱 자리가 붙어있는 좌석들은 꽉 찼지만, 건너 세 자리가 붙어 있는 곳은 자리가 널널했다. 저 ..
요 며칠은 연말정산으로 정신이 없었다. 몇 번 해봤어도 일년에 한번 치르는 행사인만큼 늘 새롭게만 느껴지고, 특히 올해는 종전근무지 원천징수영수증이라던가 월세액 명세서라던가 챙길 것이 많아져서 살펴보고 또 살펴보았다. 다행히 실수가 있던 부분들을 잘 잡아내고 서류 제출을 마쳤다. 많이 후련하다.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이상하게 마음은 괴로운데 삶에 의욕이 생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꾸고 싶다. 요근래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새해 효과’라고 칭했는데(새해에는 000할거야! 같은 의지와 비슷하게 느껴져서) 사실 이번 의욕에는 이틀 남은 배움카드의 유효기간도 한몫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상태가 부디 오래오래 이어지면 좋겠다. 매일매일 글을 쓰자고 다짐했는데 매일매일 쓰지 못했다. 잠자기 전 한 시간, ..
나는 갈수록 가성비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수요일, 목요일에만 판매한다는 서촌 취천루 군만두가 몹시 땡겨서 점심을 그걸로 할까 싶다가도 여덟개 정도의 군만두가 8천원쯤인 걸 본 순간 며칠 전 킴스클럽에서 스쳐지나간 동원 개성왕만두가 떠올랐다. 1.82kg에 9천 얼마쯤 하는 가격으로 세일 중이었는데 어림짐작해봐도 가격대비 양이 취천루보다 나은 것 같았다. 물론 장인이 직접 빚은 전통 수제만두에 냉동만두를 비할 순 없지만 지금의 나는 한방에 큰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작은 행복을 알음알음 여러번 나눠갖는 쪽이 더 좋았다. 점심 외식은 그렇게 부결되고, 일단 목적지인 장승배기역에 도착했다. 장승배기역 빵집 투어 때 한번 와본 이후 처음이다. 그땐 집에서 잠바 하나만 걸치고 나와 꼴도 별로이고 비도 내렸..
레드문이라던지 슈퍼문이라던지 하는 신비로운 천문학적 현상들이 예고되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제는 좀 열심히 별똥별을 맞이할 준비를 했었다. 내가 별똥별을 그토록 기다린 이유는, 아마 이번 별똥별은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는 뉴스 기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별다른 장비를 갖추거나 산꼭대기같은 아주아주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밤 11시 20분부터 시간당 120개씩 쏟아지는 별똥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시간대까지 부담없으니 정말 별똥별이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귀한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는 기회라면, 내 주변 사람들도 함께 하면 좋겠다 싶어서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돌렸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시간대를 알리고 함께 보자고 적극적을 홍보(?)했다. 몇 명은 고맙다 했고 몇 명..
근무중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처는 부동산이었는데,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 재계약하고 싶다는 내용을 전했다.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이미 다른 중개업자가 귀띔해준 내용임에도 막상 실제 상황이 되니 바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질 못했다. 임대료 증액은 연 5% 금액 내에서만 가능하고 한 번 올리면 1년 이내에 재인상을 할 수 없다. 이런저런 법과 함께 이번에 통보받은 인상분의 금액은 2만원이다. 새로 집을 알아보고 이사할 때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월세 인상 통보에 썩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아마도, 아, 월세살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올리면 올리는대로 받아들이고 싫으면 나가라는 식의 을의 입장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어떤 고된 세상살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