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백수일기 D+49 본문
*먹은 것
아침: 필라델피아 치즈케익 1조각, 사과주스
점심: 밥, 김치볶음, 멸치볶음
저녁: 비빔냉면+갈비, 자몽허니블랙티
**간 곳
고용센터
마이스윗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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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쌈냉면
스타벅스
롯데리아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1. 내 인생이, 너무 빠르게 휙휙 지나간다
아침 내내 실업급여 생각에 혼이 쏙 빠졌었다. 왜 미리미리 준비해두지 않았을까. 이미 십 여일이나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무리 봐도 9월 3일 월요일이 제일 베스트였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일을 수도없이 후회하며 우울한 기분으로 고정 지출을 다시 계산하고, 생각보다 더 막막한 현실 앞에 또 조금 더 우울해졌다.
일단 정신차리고 내사랑 따릉이를 타고 고용센터로 갔다. 가는 길이 자전거로 가기에 괜찮고 도보도 널찍해서 좋았다. 고용센터에서도 별다른 대기 시간 없이 접수도 금방 끝냈다. 늦게라도 했으니 다행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하자 생각하며 다시 한번 백수라이프의 의지를 불태웠다. 행복한 백수!!!
2. 한 길
한 우물을 파서 커리어를 쌓는 것. 듣기만 해도 매우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삶으로 가는 최적의 방법이다. 그런데 나는 한 우물을 파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분명 여태껏 했던 일들에 이런저런 연결고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커리어로 견고하게 쌓였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왜 그렇게 막 사냐는 안타까움 반, 질책 반이 담긴 질문을 받았다. 지금이야 무슨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중요한 건 커리어이다, 회사는 중요하지 않다, 한 업계에 계속 있으면서 차근차근 연봉을 올리는 것이 본인의 커리어를 증명해준다 등 인생의 조언을 무지막지하게 흡수했다. 텍스트로 적고보니 지극히 모범적인 삶의 답안이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순간 '어라? 그럼 나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순진한 궁금증이 들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여기저기 좀 다듬고 싶은 부분들은 있겠지만 삶은 옳고 그르다로 정의내릴 수 없는 영역같다. 10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삶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분명 H대리님에게 들은 조언에는 뼈가 있지만 모두가 정답같은 인생으로 살 순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 대화 내용들이 이렇게까지 기억에 남는 건, 나도 무의식중에 인생에 대해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겠지. H대리님한테 들은 말 중 뜨끔한 것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손끝으로 퍼져간다. 삶에 대한 고민은 언제쯤 되야 옅어지려나. 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 미래를 대비하는 것, 소박하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어떤 것에 점을 찍을지 백수에게 내밀어진 선택지는 너무도 어렵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