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백수일기 D+11 본문
*먹은 것
아침: 블루베리주스, 식빵(토마토잼+땅콩버터)
점심: 곱창모듬구이, 도토리묵국수, 볶음밥
간식: 아이스커피, 클래식 초콜릿 케이크
저녁: 청사과, 방울토마토
**간 곳
강남 곱창고
스타벅스
무인양품
아비드안경
***2018년 8월 6일 월요일
1. 입추 하루 전
아침부터 비가 쏴아아 하고 내렸다. 후덥지근한 소나기였지만 확실히 저번 주보다는 덜 덥다. 에어컨을 틀면 시원하기보다는 춥게 느껴지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이렇게 조금씩 희미하게 더위가 멀어져가기를.
2. 맛있는 식사, 커피,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조합
점심에 친구 A를 만났다. 단둘이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라 혹여나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헤어지기 직전까지 일분일초를 꽉꽉 채워 수다를 떨다가 겨우겨우 서로를 보내줬다. 둘다 곱창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 전날 새벽까지 점심 영업하는 곳을 찾았는데, 걱정반기대반으로 방문한 가게는 대성공이었다. 곱창모듬구이 삼인분에 볶음밥까지 싹싹 비웠다. 다음 코스로 찾은 강남역 스타벅스에서도 사람들로 붐비는 틈을 비집고 운좋게 자리를 잡아 여유있는 커피 한잔의 시간을 즐겼다. 서울까지 와준 경기도민 유부녀 친구에게 고마워서 이날 우리의 데이트 비용은 모두 내가 지불했다. 친구에게 기분낼 수 있게 만들어준 내 지갑에 새삼 감사했다.
3. 무엇이든 전환하고 싶은 시기
단골 미용실의 부재로 여러 차례 검색 끝에 새로운 미용실을 골라 다녀왔다. 미용실은 기분전환에 특효약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방문하는데, 간단히 앞머리를 다듬고 뿌리염색 하는 것 정도로도 깔끔함이 살아서 미용실 다녀온 날은 종일 기분이 좋다. 이번에는 이미지 변신을 해보고 싶어서 히피펌을 해볼까 생각중인데 과연 잘 어울릴지, 관리를 잘 할 수 있을지 무지 고민된다. 그나저나 백수인 주제에 돈 들어가는 일만큼은 참 잘 만들어 내는 것 같다(회사 다닐 때는 히피펌 같은 거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역시 나는 돈쓰기 천재.
4. 백수를 백수라 고하지 못하고
저녁시간을 스타벅스에서 머물 요량으로 노트북을 챙겨 나왔다. 점심을 무겁게 먹었으니 저녁은 가볍게 먹고 싶었다. 샐러드컵을 사먹으려 했는데 마침 한컵에 청사과와 방울토마토를 담아 파는 게 있길래 그걸로 저녁을 대신했다. 책 리뷰를 쓰고, 인스타그램도 보고, 유튜브도 감상했다. 유유자적한 백수의 삶이었다.
이렇게 현재의 삶에 아무런 이의가 없지만 '나는 백수다'라는 말이 툭 하고 나오지 않을 때가 몇 번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 B는 내가 그만둔 전전직장에 다니고 있다. 근 일 년만의 연락이 반가워 이것저것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가 서울에 있다고 하니 "서울로 이직한거야?" 라는 질문이 돌아왔고, 나도 모르게 "응 그렇지-"라며 능청스럽게 대답해버렸다. 심지어 통화 말미쯤 내일 출근 잘 하라는 친구 B의 마무리 인사에 너도 출근 잘 하라는 화답까지 보냈다. 전화를 끊고나니 의도치 않은 거짓말에 혼자 멋쩍어졌다. 딱히 말 못 할 이유도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스스로 괜찮은 척 하면서도 마음속 저 구석진 곳에 있던 알량한 자존심이 퍼뜩 튀어 올랐던 건 아닐지 싶다.
안경을 맞출 때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요 며칠 시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안경을 새로 맞췄는데 완성된 안경이 내일 나온다며, 직원이 내일 방문 가능한 시간을 물어봤다. "아무 때나 올 수 있어요!" 라고 씩씩하게 말했더니 "내일부터 휴가신가봐요" 라며 활짝 웃으신다. 그 대답에 당황해서 "아 네-맞아요!" 라고 맞장구를 쳤다. 휴가인 건 맞다. 다만 기간의 정함이 없는 휴가일 뿐.
5. 휘게 라이프
그렇지만 오늘, 비록 앞머리는 습기 때문에 고데기가 풀리고, 옷도 후리하게(?)입고, 입술 색은 다 지워진 상태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행복의 요소들이 하나 하나 블럭처럼 쌓여서 큰 성을 이룬 그런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에겐 아직 좋은 사람들이 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벅차 올랐다. 난 나의 행복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