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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D+10

김연어의하루 2018. 8. 6. 09:29

*먹은 것

아침: 미숫가루 두 스푼+우유, 모닝롤(딸기잼+땅콩버터)

점심: 치킨덮밥

간식: 자몽허니블랙티, 아포카토

저녁: 구복전통만두 남은 거, 누룽지 끓여먹기

 

**간 곳

신도림 디큐브시티

코나야

스타벅스

관객의취향

 

 

 

 

 

***2018년 8월 5일 일요일

 

 

1. 하루의 절반 上

 

 오늘 하루를 절반으로 뚝 떼서 한쪽은 참 유익하게, 나머지 한쪽은 허공에 날린 기분이랄까? 규칙적인 아침 일정 실천은 꽤 만족스러웠고 오랜만에 점심 약속이 있었다. 1호선 지연으로(나중에 뉴스를 보니 서울역에서 고장으로 멈춰섰다고 한다) 짜증나는 순간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디큐브시티에서 만났다. 옛날에는 약속이 잡히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숨은 맛집, 인생 카페를 찾는 게 재미였는데 요즘은 밥이든 커피든 뭐든 한큐에 해결할 수 있는 복합쇼핑몰을 더 선호한다. 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괜히 밖에서 길을 헤매거나 찾아간 가게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의 수까지 감내하며 약속 상대와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온 이야기, 생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 백수라는 사실도 서스럼없이 꺼냈고 백수라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별의별 얘기를 잘 한다. 

 그 분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단한 부와 명예를 바라지 않고 그저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먹고 살 정도의 돈만 벌면서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했다. 나는 돈도 많이 벌고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다 했다. 그건 욕심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확실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슬렁슬렁 게으름 부리는 주제에 두 가지 모두를 바라는 건 욕심이 맞는 것 같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리컵에 담긴 얼음이 녹고, 얼음 녹은 물이 사라지고도 한참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말 오후 신도림 디큐브시티의 스타벅스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새로운 생각 전환과 당분간 나의 삶에 고민해봐야 할 내용들이 정리되었다.

 

 

2. 하루의 절반 下

 

 약속이 끝나고 그냥 집에 들어가긴 싫어서 어디 갈지 고민하다가 내 마음의 오아시스인 <관객의취향>으로 갔다. 무의식중에 찾게 되는 카페가 있다는 게 뭔가 뿌듯했다.영화 상영 시간 전의 카페는 한적했지만 테이블마다 손님이 앉아 있었고 운좋게 구석진 자리를 얻었다. 사장님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신메뉴 소개글을 읽다가 아포카토로 정했다. 차가운 아포카토를 먹으면서 아까 나눈 이야기도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미리 챙겨온 시집도 읽고, 전자도서관 책도 읽어야지. 완벽하게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러나 이 중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었다. 원인은 바로 노트북. 며칠 전 부터 노트북을 하나 들일 생각에 중고나라 등 인터넷 카페를 탐색하는 중인데 너무나도 많은 종류와 스펙에 한번 탐색전을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오늘 아침까지도 윈도우 노트북을 살지 맥북을 살지 고민하다가 겨우 맥북으로 마음을 정했는데, 중고로 올라오는 맥북들의 가격과 스펙이 천지차이인지라 하나씩 살피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세상에나.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들린 소중한 카페에서 이게 무슨 짓(?)인지. 스마트폰 중독자마냥 끊임없이 스크롤바를 내리고 핸드폰에서 눈을 못 뗐을 내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에서 상상해보니 정말 별로였다. 

 

 관객의취향에서는 저녁 7시에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고, 영화도 안 보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중고 맥북을 맹검색하는 게 부끄러워져서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역까지 걸어가면서도 핸드폰을 놓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처럼 2주 정도 중고나라에 잠복하며 중고 맥북을 찾았다는 한 블로거의 글을 읽었는데 너무 공감되어 걸어가는 와중에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아래는 해당 블로거의 글에서 발췌한 일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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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다시 되었고 시간은 많아졌다. (나랑 비슷해!)

 

시간이 많아지니 이상하게 돈을 쓰고 싶어졌고 (소리내서 웃은 부분1)

내게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았다.

 

'맥북이나 하나 사보자'

 

이런 간단한 생각이 나의 삶에 이렇게 큰 혼란과 삶을 어지럽힐진 몰랐다. (소리내서 웃은 부분2)

 

맥북 중고를 사기 위해 중고나라와 맥쓰사를 잠복하기 시작한지 2주가 지났다.

 

턱수염과 콧수염은 2.5배 빨리 자라는 것 같고

핸드폰을 손에 쥐어잡고 매순간 긴장 속에 살아간다.

 

2주가 지났고 지금 내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다.

 

약간의 조급함과 다리 떠는 습관

그리고 새벽에 미세한 핸드폰 진동에도 벌떡 깨는 습관은 덤이다. (소리내서 웃은 부분3)

 

(출처: https://blog.naver.com/biggrobb/22124167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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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수염과 콧수염이 빨리 자란다는 부분을 빼면 완전 내 이야기다.

 

 

3. 최근에 달라진 소소한 부분들

 

 하나. 지하철 정기권을 쓰지 않는다. 60회 본전을 뽑으려면 출퇴근길이라는 패턴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사라졌으니 굳이 정기권을 충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버스 환승도 할 수 있어 더 자유롭게 편하게 돌아다닌다. 엊그제 글쓰기 수업 가는 길에는 도서관까지 경유하면서 무려 4번이나 환승했다. 지하철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다.

 

 둘. 이어폰을 쓰지 않는다. 날씨가 덥고, 이리저리 엉키는 이어폰 줄 정리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서 에어팟이 엄청 끌렸는데 지금은 아예 이어폰을 안 쓰는 쪽으로 바뀌었다. 음악 소리를 접어두고 주변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몰랐던 것에 대해서 새롭게 눈 뜬 기분. 이어폰 하나만 없앴을 뿐인데 다른 세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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