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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쓰고봅니다/직장인일기

카페 키이로에서

김연어의하루 2019. 1. 4. 20:00




 퇴근 두 시간전부터 헛생각들이 몽글몽글 피어 올랐는데 그 중 하나가 키이로를 갈지말지 고민하는 일이었다. 카페 키이로는 집에서 가기엔 멀고 회사에서 가기엔 가까운 곳이다. 그러니 쉬는 날 말고 평일 퇴근길에 한번 들려보자 하고 마음속에 담아둔 곳인데, 왠지 오늘이 그 적기인 것 같았다.

 왜 적기라는 느낌이 들었냐면 우선 약속 하나가 까여서 저녁시간이 비었고, 내일이 쉬는 날이라 집에 빨리 가긴 싫고, ‘쉬는 날 전날밤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병’이라는 족보 없는 병이 도졌기 때문이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명분들이다.

 다만 한가지 걸리는 게 있는데 바로 웨이팅이었다. 평일에도 웨이팅할 정도로 인기있는 곳이라고 한다. 퇴근 후 가면 마감시간인 8시까지 길어야 한 시간 정도밖에 머무르지 못하는데 웨이팅까지 있으면 정말 정말 슬플 것 같았다.

 나는 운좋게도 창가쪽에 남은 딱 한자리를 바로 받아 앉을 수 있었다. 바로 착석한 덕분에 처음 와본 이 카페에 대한 애정도가 단숨에 차 올랐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카라멜파운드케이크를 주문했다. 시간이 늦어 커피는 마시지 말까 했는데 공기도 약간 썰렁하고, 커피 한잔과 케이크 한조각으로 마감시간까지 머무르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싶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추가로 주문했다. 카라멜파운드케이크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사천오백원이었다.




 한 십 분 앉아있으려니 의자에 맞게 몸이 늘어졌다. 편하다. 이곳은. 퇴근 후 지하철을 열심히 타고 와서, 딱 한 시간 앉아있다가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 같다. 행복한 공간이다. 생크림이 듬뿍 얹어진 파운드케이크가 귀엽다.




 한 시간동안 글을 한편 쓰고 가리라 마음먹었다. 호기롭게 블루투스 키보드를 펼치고 아이폰 가로모드 잠금을 해제하는데 포스팅하려고 앱을 켜니 가로모드가 지원되지 않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키보드는 갑자기 영문만 써지고, 한글로 다시 변환하는 법을 몰라 블루투스를 껐다 켰다 해보았다. 이번에는 연결 자체가 끊긴 블루투스 키보드를 붙잡고 낑낑대다가 30분을 날려보냈다. 그 때까지 카라멜파운드케이크와 커피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가로모드로 글을 쓰는 건 포기하고 부랴부랴 파운드케이크를 잘라 먹었다. 커피는 생각보다 빨리 식었지만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니 글이 조금 써 졌다. 그 글이 바로 이 글이다.


 마감 이 분전, 만석인 카페에서 나갈 채비를 하거나 그런 기미가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덟 시가 되면 여기 앉아 있는 열 명의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나가는 건지 궁금해졌다. 여덟 시까지이니 정리를 부탁한다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작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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