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백수일기 D+17 본문
*먹은 것
아침: 사과+케일, 식빵(토마토잼+크림치즈)
점심: 모닝죽 꿀고구마
간식: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녁: 짜파구리
**간 곳
오키로북스
스타벅스
영풍문고
***2018년 8월 12일 일요일
1. 행동의 원인과 결과
왜인지 대늦잠을 잤다. 어제 맥주를 한 잔 마시긴 했고 늦게 자긴 했지만 이렇게 늦게 일어날 정도는 아닌데. 어디엔가 축적된 피로가 갑자기 터진 건지 아니면 백수 생활의 나태함이 점점 드러나는 건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데 문득 항상 늦잠을 분석하는 내 사고방식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2. 배우는 걸 좋아하는 여자
오후 한 시부터 세 시까지 교정 교열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다. 전날 급하게 잔여석을 문의했다가 만석이라는 대답을 들었고, 한 시간쯤 후에 취소자가 생겼다는 메세지를 받아 신청한 수업이다. 나는 독립서점들에서 진행하는 클래스(워크숍)을 좋아한다. 시간과 돈, 관심분야라는 삼박자가 맞으면 일단 신청하고 본다. 각 서점 담당자들이 수업 소개글을 잘 써서 그런지 커리큘럽을 읽는 것 만으로도 재미있고 뭔가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교정 교열 클래스는 한번 들어두면 앞으로 글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이번 수업이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그동안 글을 쓰며 혼자 알쏭달쏭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질문 리스트도 만들었다.
3. 그곳, 오키로북스
부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쭉 걷다보면 '5km'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왼쪽에 문이 있고, 들어서면 각종 독립서적이 늘어진 진열대와 주문을 받는 카운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독립서점은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아담한 경우가 많은데 이 곳도 그러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오키로북스는 항상 유쾌하고 친절했다. 손님을 귀하게 여기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피드마다 묻어났다. 예전에 들은 퍼블리셔스 테이블 강연 때도 본인들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진 소탈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날의 첫 방문은 그동안 느낀 좋은 감흥에 비해 좀 아쉬웠다. 워낙에 밝고 친교가 두터운 곳이어서 그런지 나같은 첫 방문자는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 분위기였다. 그 작은 공간에 있는 대여섯 명의 사람 중 나만 빼고 모두 아는 사이라 왁자지껄 정신이 없었다. 아무런 방해 없이 책을 둘러볼 수 있는 건 좋았지만 있든 없든 크게 중요하지 않은 투명인간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이곳은, 단골이 되야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4. 욕심 많은 수강생
교정 교열 클래스는 좋았다. 똑부러지는 강사님의 설명과 수강생들의 활발한 질문 덕분에 많은 것을 얻은 수업이었다. 여태껏 들어본 클래스나 강연 중에서 가장 알찼다. 그러나 수업 시작 전 배부된 두 장의 인쇄물 중 한 장만을 시간내에 겨우 끝내고, 나머지 한 장은 '댁들 가서 알아서 하세요' 라고 말한 건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사였다. 두 장의 인쇄물 모두 이번 클래스에서 마쳐야 할 과정이었다면 시간 부족으로 끝내지 못한 부분은 따로 가이드를 주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따로 해답지 같은 건 없으니 각자 알아서 해보고 모르는 건 인스타그램으로 물어보라고 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 주려는 강사님의 숨은 의도를 내가 너무 왜곡한 걸까? 따로 질의응답 시간이 없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몇몇 수강생이 남아 강사님과 수다를 떨면서 내가 준비해 간 질문을 던질 타이밍을 놓쳤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걸지도 모른다. 좋아서 더 아쉬웠다.
5. 곡해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일기의 대부분이 아쉽다는 내용뿐이다.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사실 이건 부족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시끌벅적한 오키로북스의 분위기에 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 강사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지식을 얻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 어린 아이가 부모의 관심을 받으려고 일부러 못된 짓을 하는 심정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러니 누가 이 글을 봤을 때 표면적인 내용만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이만큼이나 손님의 마음을 애태우는 곳(?)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며 경험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