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백수일기 D+21 본문
*먹은 것
아침: 카라멜 팝콘, 아이스 아메리카노
점심: 뼈해장국
저녁: 호두과자, 버터링 쿠키
**간 곳
메가박스
뼈통
영락공원
광천터미널
센트럴터미널
***2018년 8월 16일 목요일
1. 게으름에 대한 조금의 사족2
삼 일간 광주집에 내려갔다가 늦은 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일기가 많이 밀렸다. 2일치까진 어찌어찌 써본 경험이 있는데 3일치가 밀려버리면 너무 힘들 것 같아 피곤함을 무릅쓰고 꾹꾹 키보드를 눌렀다.
집에 다녀올 때면 으레 생활 패턴이 무너져서 평소 규칙적으로 해온 것들이 흐트러진다. 혼자 있을 때와 가족들과 있을 때는 시간 활용의 주도권을 쥔 사람이 완전히 다르다보니 원래 내 생활 패턴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가족끼리 외식하기로 했는데 뜬금없이 '난 글을 써야 하니 가지 않겠어요' 라고 할 순 없으니까. 그리고 집에는 나를 계속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 먹고 싶은 건 없는지, 피곤하진 않은지 등 수시로 엄마의 보살핌을 받다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몸은 늘어지면서 더 나태하게 바뀌는 것 같다(솔직히 일기가 밀린 이유는 이쪽이 더 가깝다).
2. 엄마와의 시간
일찍 일어나서 엄마랑 맘마미아2 영화를 보러 갔다. 버스 정류장에 몰린 사람들을 보고서야 오늘이 평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요일에 구애받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다니. 백수가 좋긴 좋다.
영화 시작 전 엄마랑 셀카도 찍고, 가벼운 잡담도 나눴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1편 노래들이 하도 귀에 쏙쏙 박혀서인지 2편의 임팩트는 다소 약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감동적인 요소가 더 많아져서 보는 동안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1편 노래가 다시 나올 때도 뭉클한 마음에 눈물이 찔끔. 어쨌든 엄마랑 봐서 더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 엄마는 바로 맘마미아1 OST 시디를 재생했다. 음악은 영화의 여운을 오래 남게 해준다. 정말 음악이 있어 감사하다.
3. 아빠와의 시간
어제 못 간 영락공원을 들렸다. 버스 시간을 여유 있게 체크했는데 여기저기 도로 공사와 사고로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아슬아슬하게 518번 버스로 환승했다. 많이 짜증났는데 이런 마음으로 아빠를 보러가는 게 좀 미안해졌다. 예쁜 마음을 먹어야겠다고 백 스물 몇 번째의 똑같은 다짐을 해본다.
가는 길에 아빠 생각이 올라온다. 백수가 되기 전, 육 개월의 서울 직장 생활 동안 광주 가면 아빠한테 몇 번이나 연락을 했나? 아빠 보러 내려갔을 때도 하루나 얼굴을 비추고 나머지 날은 놀기 바빴던 못난 내 모습들이 버스 밖 풍경과 함께 스쳐갔다.
봉안실에서 아빠 사진을 올려다봤다. 무작위로 배정된다는 봉안실 자리 중 가장 꼭대기 열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아빠를 정면에서 마주 볼 수가 없다. 열심히 올려 봐야 한다. 그렇게 사진을 보고, 아빠 이름과 내 이름을 눈에 새겼다. 따로 챙겨간 제사 도구도 없었지만 제례실에서 아빠 사진을 띄워 놓고 절도 올렸다. 아, 전광판으로 사랑의 문자도 보냈다. 너무 슬픈 문구는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냥 놀러온 것 마냥 보냈다. 우리가 왔다갔어 아빠. 잘 있지?? 라고.
4. 복귀
급한 것도 없는데 괜히 땀 빼고 허둥대고 싶지 않아서 천천히 서울 갈 준비를 했다. 저번과는 사뭇 기분이 다르다. 이 시간이 내가 하려는 일에 밑바탕을 깔아 둘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서울에 가고 싶으면서도 그냥 광주에 있고 싶기도 한 양쪽의 마음이 묘하게 공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