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어의하루 2018. 7. 28. 10:42

*먹은 것

아침: 사과+케일 주스, 블루베리 베이글, 크림치즈

점심: 모닝죽 단팥죽, 삶은 달걀 2개

저녁: 킴스클럽 연어회

 

**간 곳

경의선 책거리

오브젝트

카페 목수의 딸

 

 

 

 

***2018년 7월 27일 금요일

 

 

1. 서막

 

 나는 백수가 되었다.

살아오면서 일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게 처음이라 나중에 '아 이렇게 놀았던 때가 있었지'라고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이 순간들을 기록해두기로 했다. 게시판 이름은 직접적인 단어보다는 센스 있는 다른 표현을 쓰고 싶어 열심히 머리를 굴렸는데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알찬 시간을 보내야지-라는 계획이 무색하게 첫날부터 대왕 늦잠을 잤다. 6시에 한번, 7시에 한번, 8시에 한번 깼다가 10시에 다시한번 눈을 떴다. 적어도 8시엔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해야하는데 이불 속에서 계속 버티니 내 생체리듬도 당황했을 것 같다. 늦잠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상쾌했다. 응당 백수라면 이정도 늦잠은 자 줘야지! 같은 느낌?

 

 솔직히 아직 첫날이라 그런지 갑작스러운 자유가 익숙하진 않았다. 그냥 오늘이 주말인 것 같고. 뭘 해야할지 잘 모르겠고. 천천히 아침을 먹고 뉴스를 보면서 오늘 할 일을 생각했다. 사고 싶은 플래너가 있는데 홍대 오브젝트에서 판매하고 있다 해서 일단 그곳을 들릴 생각이었다.

 

 

2. 어서와 평일 낮은 처음이지?

 

 열두 시 반쯤 집을 나왔는데 뙤약볕 아래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명찰을 매고, 또는 커피를 들고 이제 막 점심을 먹고 나왔거나 이제 막 점심을 먹으러 가는 직장인들. 우리집은 오피스촌에 있으니 평일 낮이라면 당연한 풍경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들과 같은 선에 서 있었는데 하루만에 그 선의 반대편으로 넘어오다니. 신기했다.

 

 오브젝트까지는 지하철 환승으로 이동. 평일의 여유로운 지하철 호사(?)를 누려보나 했는데 붐비기도 제일 붐비는 1,2호선을 타며 서울 지하철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낮이든 밤이든 참 일관스럽게 사람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3. 경의선 책거리

 

 경의선 책거리는 왠지 이름도 애틋하고 조금 남아 있는 철길도 마음에 든다. 날이 많이 덥긴 했지만 천천히 움직이니 이럭저럭 견딜만 했다.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을 하는데 이 시간에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사연이 문득 궁금해졌다.

 

 나처럼 간단하게 벤치에서 점심을 때우는 여학생, 전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남자와 철도길에 앉아 예쁘게 포즈를 잡는 여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지나가는 긴 치마를 입은 여자, 통기성 좋아보이는 분홍색 웃옷을 입고 검은 배낭을 매고 잠시 쉬었다 가는 할머니. 오렌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어떤 여자는 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듯 했다. 개가 내 근처로 오니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는데 무서워요? 죄송해요-라며 얼른 줄을 당겨주었다. 눈웃음이 참 예쁘고 상냥했던 그분은 이 동네 사람이였을까? 괜찮아요 전 백수에요-라는 이상한 대답이 하고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4. 목수의 딸

 

 실컷 오브젝트를 구경하고 건너편 '목수의 딸'이라는 카페에서 오후의 햇빛을 피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맡은 고소한 커피콩 볶은내에 제대로 된 카페를 찾은 것 같아 기뻤다. 일렬로 배치된 벽쪽 자리는 오붓한 개인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했다. 커피까지 맛있으니 그냥, 완벽함. 메뉴에 융드립도 있었는데 날이 추워지면 꼭 와서 마셔봐야겠다.

 

 

5. 저녁

 

 중복(中伏)인 걸 생각 못 했는데  마침 연어가 먹고 싶어서 저녁은 연어회로 보양했다. 체리도 세일하길래 작은팩으로 샀는데 하나 먹어보니 달고 맛있었다.

 

 

백수의 하루.

덥고, 자유롭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