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쓰고봅니다/직장인일기

직장인의 일기 #9

김연어의하루 2019. 6. 25. 14:08

 

 점심을 먹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회사 한 바퀴를 빙 둘러 걸어오는 산책을 한다. 길을 따라 쭉 이어진 나무 그늘 밑으로 다니며 꽃과 풀을 보는데 요즘은 하늘까지 무척 맑아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회사에서 잠시나마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 늘 감사하다.

 

 좋은 날씨가 좋긴 한데 오늘은 햇빛이 좀 뜨겁다. 양팔을 들었다내렸다하며 얼굴로 쏟아지는 햇빛을 막고 걷다보니 우수수 떨어져 있는 살굿빛 열매가 보였다. 근처 나무 팻말을 살펴보니 진짜 살구가 맞다. 매실처럼 작은 사이즈의 살구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먹을 수 있는 건가. 하나 집어볼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는데 큰 종이상자를 든 아주머니 한 분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아주머니는 살구 뭉치 옆에 상자를 내려놓고 말없이 살구를 담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이 살구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말을 걸 뻔 했다.

 

 나는 또 계속 걸어서 더 울창한 길로 들어섰다. 직원 두 분이 트랙터를 세워두고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뒤를 지나쳐가며, 지나가는 사람이 없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오니 꿀같은 휴식 시간이 더 달콤하겠구나하고 지레짐작했다.

 

 며칠 전 네잎클로버를 찾겠다고 쭈그리고 앉아 진을 쳤던 작은 풀밭을 지나 사무실로 돌아왔다. 평소랑 다를 바 없는 산책 코스였음에도 오늘이 유독 즐거운 이유는 그 산책 속에서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