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지은이: 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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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신교육을 받는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돼."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노력하지 않고 얻은 성공은 비겁한 거야."
이런 교육 말이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신앙처럼 품고 살아간다. 이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세상을 좀 살아보면 알게 된다. 아니, 살면 살수록 아니라는 것을 더 크게 느낀다고나 할까? 그래서 혼란스러운 거다. 우리의 가치관이 흔들리니까.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심히 안 했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했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서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왜 노력이 우리를 배신하는지,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도 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괴로움을 줄이는 방법은 안다. 분하지만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반드시 '이만큼'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괴로움의 시작이다. 보상은 언제나 노력한 양과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한 것보다 작게 혹은 더 크게 주어진다. 어쩌면 아예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노력한 것에 비해 큰 성과를 얻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비난하지 말고 그 성과를 인정해주자. 그것은 나 역시 노력에 비해 큰 성과를 얻을 수도, 노력하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질투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 행운을 인정하면 더 많은 행운이 찾아온다나 어쩐다나.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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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남들이 가리키는 것에 큰 의문과 반항을 품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타인의 시선이 신경쓰였고, 그들 보기에 괜찮은 삶을 살려고 애써왔다. 잘 안 됐지만 말이다. 사실 가능하면 '인생 매뉴얼'에 맞춰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는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내가 욕망하며 좇은 것들은 모두 남들이 가리켰던 것들이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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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포기는 끝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체념이나 힘들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의지박약과는 다르다. 적절한 시기에 아직 더 가볼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내어 그만두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이니까. 인생에도 손절매가 필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작은 손해에서 그칠 일이 큰 손해로 이어진다. 무작정 버티고 노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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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좀 덜 하고, 노력도 좀 덜 하고, 후회도 좀 덜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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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은 마음, 결국 이런 마음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드는 것이다. 무인도에 혼자 있게 된다면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따위가 들 리 없다. 자꾸 혼자 있고 싶어진다면 그만큼 인간관계로 힘들다는 이야기다.
혼자 있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다. 인간관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시간. 그렇기에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얼마든지 혼자 하는 걸 즐겨도 되지 않나 싶다. 단, 그러고 나서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피곤하고 짜증나는 사람들 속으로.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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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계획을 이행하려 떠나는 미션이 아니다. 계획은 그냥 계획일 뿐 그대로 될 리도 없고, 그대로 안 된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언제나 계획은 필요한 것이지만 계획에 얽매이는 것은 의무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챙겨야 하는 준비물은 계획표가 아니라 '태평함'이 아닐까? 비즈니스도 아니고 놀러 가는 건데 태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데이트도, 산책도, 여행도, 가능하면 인생도. 목적 없이 우아한 헛걸음으로... 즐거움은 그럴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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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꿈꾸던 모습이 되지 못한 삶을 보며 괴로워하진 않았으면 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지금의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꿈을 이룬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루지 못해도 그만이다. '에이, 아쉽다' 정도로 훌훌 털고 지금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기에도 짧은 생이다.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실패한 인생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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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없이 인생을 산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것부터가 기대한다는 이야기니까. 그럴 땐 이렇게 말해주자.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마음에 욕심이 일어날 때마다 이 말을 주문처럼 외워볼 생각이다. 그래,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기준을 만들지 말자. 어떤 기준 없이, 특별히 바라는 것 없이, 즐겁게 살아봐야지.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어? 의외로 괜찮네,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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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보상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책 초반에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고 이 책이 좋아졌다. 내 마음속에서 아닌 척, 모른 척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내용이 많아서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