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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 신미경

김연어의하루 2019. 5. 24. 10:52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지은이: 신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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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순간에도 임시의 삶은 없다. 어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내일은 어떤 예측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가장 확실한 것은 나는 지금을 살고 있고, 나를 잘 돌보며 사는 것만큼 확실한 만족을 주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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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대 포장 장보기에서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운반에 드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포장재를 따로 거두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주문하자는 원칙이다. 그러자면 계획적인 식단이 필요하고, 일요일은 일주일 치의 식단을 짜는 날이 된다. 표를 만들어 단백질과 채소, 탄수화물, 지방으로 칸을 나누고, 단백질 음식 재료를 중심으로 주인공이 될 메뉴를 정한다. 날씨 예보를 보고 서늘한 날 마음마저 따뜻하게 하는 전골을 메뉴에 넣기도 하며, 그날의 기분이나 활동량에 따른 열량을 상상하는 것이 식단을 계획할 때의 포인트. 식단대로 먹었는지 하루를 기준으로 점검하고, 덧붙이는 말을 쓰는 칸을 두어 건강 상태가 안 좋았거나 후회되거나 특별히 기억나는 메뉴가 있었다면 나중에 참고하려고 적어둔다. 그리고 좀더 재미있게 먹고 살려고 홈메이드 식단에 백반집처럼 메뉴 이름을 종종 붙여본다. 낫또 생선구이 정식, 채소 듬뿍 카레 정식, 리얼 게살 볶음밥.. 오늘 신메뉴로 개발한 멍게 비빔밥도 만족스러웠으니 개성 있는 이름 그대로 고정 식단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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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할 준비는 끝마쳤다. 들고 나갈 가방은 현관 근처에 있고 오늘 신을 신발도 이미 꺼내어져 있다. 테이블 위에는 펄펄 끓인 물에 잘 우려진 홍차 한 잔에 레몬이 곁들여져 있고, 이내 마시기 좋은 온도로 고요하게 식어간다. 나는 홍차를 홀짝이며, 아이패드를 꺼내 들어 경제신문 앱으로 주요 기사의 제목을 훑어보고, 몇 가지 도움이 되겠다 싶은 소식은 메일로 보내 스크랩을 한다. 느긋하고 또 느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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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지에서 먹는 조식은 맛보다 여유를 먹는 시간 같다. 바쁠 것도 없고, 긴장될 일도 없는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맞이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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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홍차의 시간은 그저 근면 성실하게 보낼 오늘 해야 할 일을 곱씹는 것 외에도 무엇을 하면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있을지를 그려보는 순간. 그리고 하루의 수고가 끝난 뒤에 어떤 달콤한 시간을 보낼지 미리 상상하는 하루의 시작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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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여행지에서든 그 나라의 조잡한 기념품을 사지 않은 지 오래다. 여행자들 리뷰 사이에서 '예쁜 쓰레기'라 험하게 불리는 마그넷이나 엽서들은 여행을 기념하기보다 집에 굴러다니는 불필요한 잡동사니가 되기 쉽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이탈리아 여행 끝에 기념으로 가져온 것은 바로 레몬을 일상에 들이는 그들의 문화였다.

 

 장바구니 목록에 빠지지 않는 신선한 레몬 하나. 매주 레몬 하나를 사서 베이킹소다로 껍질을 잘 씻어낸 후, 슬라이스로 자르고 슨맛이 나는 씨를 모두 없앤다. 그렇게 정리한 레몬을 밀폐 용기에 담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데, 홍차와 탄산수에 넣어 마시기도 좋고, 생선 요리와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때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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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비슷한 일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에서도 가끔은 새로운 것을 더해 변화를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일상이 지루하다 느끼는 것은 어떤 새로운 영감도 얻지 못하는 날이 반복될 때다. 여행에서 발견한 이국적인 문화를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더하는 것. 우연히 누군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 그러한 영감을 일상에서 한 번쯤 시도해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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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일상의 매너는 모두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혼자 있을 때도 자신에게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대단한 격식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자연스럽고 편한 모습도 좋지만, 남에게는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가장 한심하고 초라한 모습을 스스로에게 매일 보여주고 산다면 그것이 진정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유행처럼 불고 있는 자존감을 높이란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험한 행동을 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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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효리네 민박>만큼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 보았다. 꾸준히 요가 수련을 하는 이효리의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매력적으로 보이게 마련이고, 오랜 세월 동안 다져온 내공이 느껴지는 요가라서 더 눈을 떼지 못했던 것 같다. 방송에서 이효리는 일을 시작하고 집의 가장이 되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찾아온 어깨 통증으로 요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가가 힘들지만, 그것보다 삶이 더 괴로워서 오히려 요가를 하는 순간이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그때 문득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수련이 결국 편안함을 가져올 수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 매트 위로 올라 헐렁한 파자마 차림으로 가장 쉬운 난이도의 요가 스트레칭을 하는 것. 밤새 누워 있던 몸의 허벅지 뒤 근육이 쭉 펴질 때의 시원함이 내가 얻을 수 있는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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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이 문득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을 억누르는 큰 고민거리 없이 어제와 똑같은 일이 평온하게 반복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생각해보면 일, 인간관계, 먼 미래와 같이 늘 걱정거리를 만들며 사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법 없이 특별한 고민이 없으면 용케 작은 것 하나라도 우환거리로 만들고 마는 나쁜 습관. 이제 지루함을 즐기며 설레는 일보다 '오늘도 무탈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라는 염려 섞인 바람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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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보통 아름다운 꽃을 보거나 심신을 감싸 안아주는 아로마테라피와 같이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에서 찾기 마련이지만, 나의 일상적 행복 의식은 충분히 예상되는 가까운 미래의 필요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다시 이 슬리퍼를 신을 나를 위해 신기 편한 방향으로 바꿔놓는 일처럼. 섬세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나 있을 때 바라는 대로 평온하고 무사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다.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는 집 안, 흐트러짐 없이 보송보송한 침구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순간.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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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 행동 연구자인 러셀 벨크 교수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위해 쇼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여겨 쇼핑을 통해 현실에서 속하지 못하는 특정 그룹에 속한 느낌을 받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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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일이란 치워놓으면 금세 어질러져서 또다시 반복해야 하는 시시포스의 노동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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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유일하게 겁이 없는 영역이 있다면 새로운 제안이나 기회를 덥석 물고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추진력에 있을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면,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 부딪혀보았는데 깨지고 실패한다면 배울 수 있고, 행동을 수정할 수 있다. 미지의 분야에 겁을 먹고 이러쿵저러쿵 상상만 하면서 결국 안 될 거라 결론내리고 시도조차 안 해보는 일보다는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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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서 충분히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항상 의지하고 경제적, 정서적으로 매여 있다면 어떻게 내가, 그리고 상대방이 행복할 수 있겠는지. 나와 주변을 가꾸며 충분히 휴식하는 저녁만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에서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도 괜찮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집에서 보내는 평일의 저녁이 얼마나 소중한지 오늘 저녁 나와 약속한 일들을 지키며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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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금을 보내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이렇게 사소한 취먕마저도 다른데, 애초에 타인에게 이해받길 원하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꽤 무모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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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해봤지만 중단했던 일에는 이유가 있었을 테고, 포기하지 않았다면 다시 시작하면 그뿐이다. 이미 시작이라는 가장 어려운 단계를 지나왔으니 잠깐 멈추었던 것을 다시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어떤 배움도 쓸모없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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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흘러가는 시간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계획적으로 그러나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언제나 건강함을 우선으로 할 것

 

 삭막할 때에도 아름다움에서 위안을 얻는 태도

 

 무언가 이루고 싶다면 말은 짧게 실천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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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에 품은 목표를 이루는 날이 언제일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상황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다가도 급작스레 변하곤 하니까. 그러니 계속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삶의 방향이 된다. 매일 해야 할 일을 정해놓고 성실하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크고 작은 무언가를 이루곤 했다. 또는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때가 있어 절대 헛되지 않았다.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하다면 지금을 점검해본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내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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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걸로 만들고 싶은 내용,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 좋은 내용 등등.. 읽다가 표시해둔 부분이 참 많다. 제목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고른 책인데 담담하게 풀어낸 작가의 이야기가 멀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좋은 루틴을 쌓아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