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어의하루 2019. 4. 10. 21:26

 

   지하철 시간표를 외우고 있고 그 지하철을 언제 타야 지옥철을 피할 수 있는지 훤히 꿰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괴로운 일이다. 멈춰서 사진도 찍고 싶고 낯선 동네를 느긋이 둘러보며 보물같은 장소들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5분 안에 오는 지하철을 타지 않으면 그 후 무시무시한 퇴근길 지옥철에 압사당하며 돌아가야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걸음속도를 쉽게 늦출 수 없다.

 지옥철 피하는 게 뭣이 중허다고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놓치며 살아가나. 마음속에서 두 자아가 싸운다. 그래도 나름 타협안(?)으로 하는 행동이 일단 걷다가 담고 싶은 풍경이 나오면 3초정도 멈춰서 얼른 찍고 다시 빠르게 걷는 것. 간밤의 비바람에 벚꽃이 다 져버리나 싶었는데 이럭저럭 풍성하게 남아 있어 눈이 행복했고 나는 아주 여러 번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후다닥 찍고 후다닥 걷는 게 은근히 재미있어서 혼자만의 놀이에 푹 빠졌다.

 <오늘 하루가 완벽한 하루까진 아닐지라도 괜찮은 하루일 수 있다는 믿음. 괜찮은 하루일 수 있다는 믿음. 하루종일 우울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한 번 웃을 수 있는 게 삶이라는 믿음.>

 4월에 가죽장갑을 찾게 될 정도로 시린 날씨지만 퍽 즐거운 귀가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