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여행기
2018년 여름은 참 혹독했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들도 많았고 날씨는 또 어찌나 덥던지. 완전히 지쳐버린 어느 평일 저녁, 이대로 버틸 순 없다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속초 여행을 결심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았다. 사색에 잠겨 여유롭게 바닷길을 걷는 모습, 닭강정을 사먹는 모습 등을 상상하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가장 편한 옷을 입고 아침 7시 차를 탔다. 당일치기 여행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채운 하루를 보고 싶어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것을 선택했다. 우등버스의 한 줄 좌석에 앉았는데 넓고 편해서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몸을 푹 묻고 갔다. 맞은편 창문 너머로 반짝반짝 흘러가는 한강이 보였다. 시원한 에어컨에 지루하지 않은 바깥 풍경까지 참 행복했다.
다만 순조로운 출발 속에서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여름이라는 날씨에 대한 대비였다. 바다에 간다고 하니 막연히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선글라스는커녕 그 흔한 모자나 양산조차 준비하는 걸 잊어버렸다. 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 것 같았고 정 더우면 실내 카페로 들어가면 된다고 대충 생각했다.
속초 고속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속초 해수욕장은 걸어서 200미터쯤 된다. 터미널 근처에 바다가 있으니 이동이 편리해 좋다. 열심히 걸었다. 콘크리트가 조금 뜨끈뜨끈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그러나 해수욕장의 지글지글한 모래사장에 발이 푹 잠긴 순간, 갑자기 우리 집 신발장 안에 고이 잠들어 있을 양산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속초의 태양은 많이 뜨거웠다. 내가 기대한 바닷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고 오히려 수면에서 반사된 햇빛이 따갑게 피부를 찔렀다. 속초 해수욕장에서 외옹치 해수욕장을 지나 대포항까지 쭉 걸어 내려가는 것이 이번 여행 코스였는데 약 2키로미터, 30분 정도 걸린다고 지도 앱이 말했다. 2키로미터, 30분동안 걸을 수 있을까. 일단 걸어보기로 한다.
많이 더웠다. 게다가 걷다가 마주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자나, 양산이나, 손풍기 같은 나름의 피서 도구를 하나씩 갖추고 있었다. 온 몸으로 바닷가의 햇빛을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입고 있는 린넨 셔츠에서 짠내가 났다. 속초에 놀러 간다고 하니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한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에게 선물할 바다 영상을 찍기 위해 걷다가 몇 번이고 멈춰서 더 깊은 모래사장으로 들어갔다. 발끝에 물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서서 파도가 부서지는 장면을 담았다.
걸어도 걸어도 대포항은 쉬이 가까워지지 않았다. 걷다 보니 문득 속초 해수욕장의 산책로가 무척 잘 만들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적당히 바다와 가까우면서 직선으로 뻗은 깨끗한 길. 이렇게 더운 한여름 말고 선선한 날 걸으면 더 좋겠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좋은 산책길이겠다. 나는 샌들 모양대로 익어가는 발등을 못 본 척하며 벌써부터 다음 속초행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