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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다 - 미셸 퓌에슈

김연어의하루 2018. 10. 15. 17:49


나는 오늘도 8 (버리다)

지은이: 미셸 퓌에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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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다'는 것은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알고 싶지 않다.

 

뭐든 버리기만 하면 커다란 검은 구멍으로 들어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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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날 쓰레기차를 따라가본다면

아마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우선은 도시의 거대한 쓰레기 하차장에 매일 쌓이는

생활쓰레기의 양에 놀라고,

다음은 이 어마어마한 양이 보관되거나 태워지는 방식에 놀라게 될 것이다.

간혹 가장 위험한 쓰레기들은 가난한 나라로 '수출'되기도 한다.

그 쓰레기들은 그곳에서 재처리하기로 되어 있지만,

어떤 환경에서 그렇게 하는지 확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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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깨끗한 집에서 살고, 좋은 냄새가 나는 부엌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내다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마치 밀물처럼,

거대한 강처럼 밀려왔다가 쓰레기통이라는 작고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그 쓰레기통도 자신보다 더 큰 검은 구멍의 조직망에 연결되어

쓰레기 분리수거장, 재처리 공장과 쓰레기 하치장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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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이라는 검은 구멍들이 없다면

이 소비 사회는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 안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으로 금방 뒤덮여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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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우우한 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걷다가,

길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쓰레기 행렬을 보면,

과연 인류는 생존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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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버리는 것들을 더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버리는 것을 처리하는 사람들도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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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보고싶지 않은 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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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는다는 것은

굴욕을 경험하는 것이며,

이런 경험은

폭력의 깊은 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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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것들의 귀환은

대재앙의 시나리오와

흡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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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다는 것은 나로부터 멀리한다는 것이며,

멀리한다는 것,

그러니까

나와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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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단지 그 관계로 인한 혜택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관계를 돌보며 지속될 수 있게 하고,

관계를 상하게 할 일은 피하며,

필요한 부분은 수리한다는 것이다.

시작되는 첫 순간부터, 그리고 그 후로도 매 순간 관계를 돌보기 위해서는

관계의 어떤 부분도 정말로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런 결과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無)로 사라질 수 있는 부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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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부엌에서,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는

내 즐거움을 위해서

지구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생각하자.

또한 가장 사소한 관계부터 가장 열정적 관계까지,

그 관계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나와 상호작용하고 있는 사람이 겪을 일을 헤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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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퓌에슈의 <나는 오늘도> 시리즈를 읽고 있다.

가장 끌렸던 <먹다>와 <버리다>를 먼저 읽었는데

<먹다>는 아쉽게도 리뷰 남기는 걸 깜빡하고 책을 반납해버렸다.

 

<버리다>는 전부터 계속 마음이 쓰인 책이었기에

모든 문장을 외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어내렸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게 되면서

'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어렴풋하게 품고 있던 고민이나 궁금증에 대해

이 책에서 짚어준 부분이 많아 몇번이고 읽었다.

 

잊지 않고 두고두고 꺼내보기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