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D+48
*먹은 것
아침: 모닝죽 호박죽
간식: 필라델피아 치즈케익 두 조각, 아이스 아메리카노
점심: 회전초밥
저녁: 짜파구리
**간 곳
미카도스시
요가교실
카페 그레코
***2018년 9월 12일 수요일
1. 임시 종료
취업 준비의 쓴맛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합격 발표가 나는 오늘 은근히 합격 전화를 기다렸고, 평균 15분에 한번씩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합격자 발표가 올라온 이후에도 합격자 발표를 확인했다. 발표글을 계속 보다보면 합격자 이름이 내 이름으로 바뀌기라도 할 것처럼. 누구 한명은 더 좋은 곳에 취직해서 여기를 포기했으면-하는 바람도 있었다.
준비했던 두 곳의 면접이 끝났고, 한 곳은 결과까지 나왔다. 짧은 듯 짧지 않았던 일주일이 스쳐지나간다. 한 곳마다 준비해야 했던 어마무시한 양의 서류, 방문 접수, 면접, 증명서류 수령 등을 위해 몇 차례 오간 버스와 지하철, 공인인증서로 민원24에 접속해서 각종 증명서를 신청하고 다음날 찾으러 가는 행위의 반복 등등.
취준이 힘들다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거구나 싶다. 최종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 제쳐두고 뛴다. 분명 열심히 뛰었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으면서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과 노력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처음 면접본 곳의 합격자 발표가 나오지 않아 하루종일 초조했다. 모든 면접이 끝난 기념으로 점심에 초밥을 먹으러 가려했는데, 합격 전화 받고(?) 기분 좋게 먹으러 가자는 생각에 오후 두 시까지 집에서 기다렸다. 참고로 합격자 발표는 오후 여섯 시 이후에 올라왔고 난 합격하지 못했다. 저녁 요가 교실에서 홈페이지 새로고침을 누르니 발표가 떴었고, 덕분에 모든 걸 비운다는 해탈의 마음으로 요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여름밤의 꿈? 초가을밤의 꿈?을 꾼 것 같다. 혼자 즐거운 상상을 듬뿍 했다. 아무한테도 취업 준비를 말하지 않고 혼자서 잘 해냈다는 그런 칭찬을 받고 싶었다.
꿈이 깨지고 나니 현실이 보인다. 취업이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미뤄둔 실업급여 신청, 며칠 자체 휴강한 영어회화 공부, 너덜너덜해진 지갑, 밑바닥을 치고 있는 블로그 방문자 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지. 우선 실업급여 신청이 시급하다. 이걸 대체 왜 미룬거지? 달력으로 하루하루 날짜를 짚어가며 생각해보니 저번 주 화요일부터 서류합격 발표가 나면서 실업급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월요일에 바로 갈 것을. 폭우가 내리던 그 날 바깥바람 쐰답시고 줄리앤줄리아를 갔었다. 어쩐지 그 날 느낌이 쎄하더라. 당시 백수일기에도 '억지로 꾸역꾸역 밖에 나오는 건 좋지 않다'라고 써놓는 통찰력(?)을 보였는데 어째서 바로 깨닫지 못한 건지.
이제 일기를 마무리하고 긴급 재정상태 점검에 들어가야겠다. 생각해보니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갈 돈들은 자동이체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그것도 깜빡하고 있었다. 퇴사 전 내가 야무지게 재정 계획을 세워놨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나는 바보 모지리, 그저 보이는대로 돈을 쓰는 돈까먹는 기계였다. 으음. 슬프군.
2. 가로수길
한없이 울적한 내 머릿속과 반비례하는 맑고 청량한 날씨여서, 자전거 타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달린 길들은 사람의 왕래가 적고 폭이 넓은 도로라 더 마음껏 달릴 수 있어 좋았다. 당분간은 자전거를 좀 많이 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