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D+29
*먹은 것
아침: 청사과 1알, 무화과 2개
점심: 밥, 깻잎무침, 두부부침
간식: 오늘의커피 만델링
저녁: 팥깜빠뉴, 스키피 아이스크림콘
**간 곳
도서관
다이소
알라딘
교보문고
***2018년 8월 24일 금요일
1. 이제 돈 들어올 곳은 없다
마지막 월급이 들어왔다. 몰랐던 것도 아닌데 마음이 헛헛하다. 지난 이십 팔 일여간 이걸 믿고 그리도 여유로웠나 싶다. 물론 이런 기분은 잠시뿐 금방 정신을 차리고 관리비와 주민세 등 각종 금전 관련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지만 다음 달부터는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성큼 와닿았다. 오랜만에 가진 현실 자각이었다.
2. 책으로 하는 교토 준비
교토는 여러 번 갔지만 늘 머무르는 시간이 짧았다. 길어야 하루 정도? 그래서 이번에는 온전히 교토에서만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가기 전 교토 관련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 읽고 싶어져서 도서관에서 두 권을 빌려왔다. 책 두께가 두툼해서 여행 전에 다 못 읽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혀서 두 시간만에 절반 정도 읽었다. 아, 물론 한 권의 절반.
외에 읽은 다른 교토 책들은 <일단 멈춤, 교토>,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교토 구석구석 매거진>. 유명한 가게는 설명이 겹치기도 했지만 몰랐던 곳이 많아 즐겁게 갈 곳을 고르는 중이다.
3. 천성인어
천성인어 필사를 다시 시작했다. 예전부터 참 좋아하는 공부 소재였는데 꾸준함이 부족해서 놓았다가 들었다가를 몇번이나 반복했었다. 그 사이 이 칼럼은 유료로 전환되어 월 구독료를 지불해야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 칼럼을 묶어 출판한 책을 살지, 월구독을 신청할지 이틀 고민하다가 월구독을 신청하는 것으로 정했다. 모눈노트에 한 글자씩 눌러쓰는 기분이 새로웠다. 일 외에 일본어를 손으로 써본 게 얼마 만인지.
4-1. 작가와의 만남 후기 上
합정역 교보문고에서 <뉴욕규림일기>를 쓴 김규림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북토크 시작 전 선반 너머로 작가님이 보였다. 미리 싸인을 받아두려고 책을 들고 가서 인사를 건넸는데, 한 마디 말을 나눈 순간부터 '와 여기 오길 잘했다!' 라고 느꼈다. 별 이야기 나누지도 않았다. 그냥 싸인을 받으려는데 둘다 펜이 없었고 '어어 저 가방에 있는데', '어 저도 어어' 뭐 이런(?) 이야기. 결국 끝나고 싸인 받는 걸로 했는데 이 짧은 대화에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말 한 마디에서부터 엄청나게 좋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었다.
4-2. 작가와의 만남 후기 中
북토크 장소에 따로 컴퓨터를 이용할 만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스케치북 두 개에 미리 준비해온 Q&A를 적어와서 하나씩 넘기는 아날로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질문 하나 하나에 열심히 답해주는 작가님을 보니 준비를 많이 해오신 게 느껴졌다.
Q&A 중 재치있던 부분이,
책을 만들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다!
그림을 그리기 싫을 때는? 안 그린다!
그림을 그리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스피드!
위와 같은 질문에 정말로 위와 같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해주셨다. 그, 그렇지 힘든 점이 없을 수도 있지.. 그림이 그리기 싫을 때는 안 그리는 게 맞는 거고.. 답변들이 너무나 작가님다워서 모인 사람들 모두 빵 터지고, 작가님도 와하하 웃는 그 순간이 참 신선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의응답이 나왔다. 뉴욕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이 무엇인지, 컴포지션 노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지 등등.
그런데 이날 나온 질문 중 일부는 책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라 좀 아쉬웠다. 솔직히 나는, 더 뻔뻔한 질문들이 나오길 기대했다. 나부터가 책 이상의 세속적인 것(?)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회사라는 본업과 겸해서 책을 낼 수 있었는지(뉴욕 여행은 연차로 다녀오신 건지! 그런데 그렇게 긴 연차를 쓸 수 있다니 부럽다), 종종 개인적으로 만드는 티셔츠나 스티커는 어떻게 제작하는지, 소량 제작이 가능한지, 그렇게 자유로운 소비 생활을 즐기게 해주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첫 책인 도쿄 여행기는 정말로 책을 낼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낸 게 느껴졌지만 뉴욕은 아예 처음부터 책을 만들 목적으로 가신 것 같은데 출판사의 협찬을 받으신건지(그렇다면 부러워서..) 등등. 아. 적고 보니 더욱더 세속적이다.
물론 이런 질문들은 조용히 내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4-3. 작가와의 만남 후기 下
원하던 답을 다 찾지 못한 아쉬움은 어느 북토크나 워크숍을 가도 다 똑같은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가 어떻든 무슨 내용이 오가든 그냥 작가님을 본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었던 시간이었다. 작가님은 아주 유쾌한 사람. 어떤 것에도 얽매여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당당하게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모습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명언으로 오늘 일기 마무리!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된다면
문장이 간결하게 꾸밈이 없다면
-우디 앨런